
여름이 다가오니 겨울에 봤던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이 떠올라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스탕 Mustang은 사전적 용어로 '미국 대평원에 사는 야생의 작은 말'을 의미합니다. 주인공 랄리는 터키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다섯 자매 중 막내의 이름이며 제목에 들어가듯 영화는 '여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다섯 자매의 이야기인데 사실 내용은 웃다가도 웃을 수 없는 상황들이 많이 나옵니다.
△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폭력이 아닐까
터키의 작은 마을에 사는 다섯 자매는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삼촌 밑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평범한 학생처럼 학교에 다니고 동네 과수원 서리도 하고 바닷가에서 또래 남학생들과 물장난도 치며 자유롭게 지냅니다. 하지만 동네 아줌마가 남학생들과 노는 자매들을 보고 이 사실을 자매의 할머니에게 고자질하며 문제가 시작됩니다.
할머니는 자매들을 붙잡아 '순결 검사'를 하고 앞으로 행실을 똑바로 잡겠다고 선언하며 외출을 금지시키고 신부수업을 하며 맞선 자리를 잡습니다. 무스탕, 초원을 힘차게 달리는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다섯 자매들에게는 갑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신한 여성'으로 바꾸려는 할머니와 삼촌의 행태가 실체 없는 폭력처럼 다가옵니다.
결혼할 수 있는 나이인 첫째와 둘째부터 시작해서 선자를 찾아다니는데 여기에 자매들의 의견은 일절 듣지 않고 오직 남자들만이 의견을 나누고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 그 의견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선자리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부분은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랄리가 가고 싶었던 '여자들만이 입장 가능한 축구경기'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 갇혀있는 나날에 지루해하던 랄리는 축구대회가 가까운 곳에서 열린다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의 보호자격인 삼촌에게 가고 싶다고 부탁하지만 통하지 않아 자매들과 힘을 합쳐 비밀리에 집을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삼촌과 그 친구들의 눈을 피해 탈출한 자매들은 축구장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자매들의 일탈을 알아차린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를 알리는 대신 비밀리에 돌아오는 걸 도와줍니다. 하지만 더는 탈출할 수 없게끔 집 창문은 물론 마당 앞까지 높은 창살로 막히게 됩니다.
영화 속 자매들이 힘껏 소리를 지르며 자유를 느꼈던 축구대회에는 남자의 출입을 금지하고 여자들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로 2011년 9월 터키축구협회에서 훌리거니즘(스포츠 등에서 폭력성을 보이는 관중, 팬)을 몰아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남자들이 독점해왔던 터키 프로축구 경기에 여자와 12세 이하의 어린이들의 입장만 허락했습니다. 내부적인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터키축구협회의 의견은 강경했습니다. 그리고 소요 사태의 당사자인 성인 남자들을 배제하고 여성과 아이만 허락했을 때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그때 축구경기 경기 표가 매진되는 등 대회를 향한 여성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여성들이 스포츠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스포츠 뿐일까요?
랄리와 그 자매들은 그 속에 제각기 다른 '무스탕(야생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영화 속 축구경기장에서 서로 웃으며 안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낸 랄리
잠깐의 일탈도 끝이 나고 결혼을 강요당하던 첫째 딸은 남자친구를 설득해서 그와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저항할 생각도 없는 둘째는 순순히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날밤이 지나고 처녀임을 상징하는 피가 보이지 않자 의심을 받게 되지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반박조차 하지 않으며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한편, 여전히 철장 속 집에 갇힌 자매들 중 셋째는 그동안 자신을 몰래 성폭행하던 삼촌 때문에 방황하다가 자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촌이 넷째까지도 성폭행하게 된 걸 알게 된 할머니는 급히 넷째도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랄리는 동네 청년에게 운전을 배워 삼촌 차를 몰래 훔쳐 넷째 언니와 도망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넷째의 선자리날, 할머니와 삼촌이 넷째 언니를 보러 온 신랑과 그 가족들을 맞이하는 틈을 타서 문을 잠가버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매들의 자유를 억압했던 철장이 삼촌과 할머니를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 자매들이 탈출을 준비할 시간을 법니다. 그리고 겨우 집을 탈출한 자매들은 차를 타고 랄리가 알고 있는 타국의 선생님을 찾아가서 만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랄리는 넷째와 함께 자신의 목을 억압하는 굴레를 벗었지만 그 후를 상상해보면 정말 '벗었을까' 걱정이 생깁니다. 오늘날 남녀평등, 성차별금지 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올라왔지만 보이지 않는 성별의 굴레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알고 있기 대문에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불편했고 자매들이 진정으로 탈출하길 바랐습니다.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은 넷플릭스, 왓챠, 티빙을 구독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감상 가능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심심할 때는 더 재미있는 영화를 감상하시는 게 정신에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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